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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팡 3세 

지브리 스튜디오의 시작이 된 작품 "루팡 3세"

지브리 스튜디오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었던 "루팡 3세"

그리고 첫 극장판 작품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독립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다.

일본의 20세기 버블경제 시절에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시절의 영화들은 요즘봐도 명작들이라고 불리는 영화들이 넘쳐난다.

루팡 3세에 나오는 작화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수려하면서 감성을 자극하는 작화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들은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자극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미래소년 코난이 나오기 전 기회의 장이었던 만큼 스케일이 다른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아직도 루팡 3세가 우리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같다.

루팡 3세에 나오는 칼리오스트로의 성은 액자에 걸어두고 싶을 정도의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

코믹함과 긴장감을 가지고 있으면 액션신이 정말 깔끔해서 조화로웠다.

이 영화의 일화로 오오츠카 야스오가 감독을 맡을 생각이었지만 이미 루팡 3세라는 캐릭터가 고착화한 상태였기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에게 상담을 했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은 "그럼 내가 할까?"라고 해서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만약 이 우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미래소년 코난과 지브리 스튜디오의 영화들이 안 나올 수도 있었다.

 

악당을 잡는 정의로운 도둑 루팡 3세

모나코 국영 카지노에 든 카지노 수익금을 훔쳐내 달아난 루팡과 지겐 다이스케.

돈뭉치에 파묻혀 기뻐하던 것도 잠시 루팡은 자신들이 훔쳐낸 것이 정교하게 꾸며진 사상 최강 위조 지폐

"염소 지폐"임을 알고는 훔친 돈뭉치들을 모두 밖으로 날려보낸다.

지폐의 정체를 알아내고자 유럽의 칼리오스트로 공국에 위장 잠입했다.

달리던 자동차가 펑크가 나버렸고 예비용 타이어로 갈아끼우고 있을 때, 난데없이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는데

안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그녀를 쫓는 듯한 무리들이 차를 타고 뒤쫓고 있었다.

그 상황을 보고 정의감이 불타오른 루팡은 곧바로 핸들을 잡고 여자의 뒤를 쫓기 시작했고, 그녀가 누구이고

그녀를 쫓는 자들의 정체를 알게되었다.

소녀의 정체는 칼리오스트로 대공가의 후계자 클라리스 칼리오스트로였고,

그녀를 쫓는 건 현재 공석인 대공직을 대신해 임시로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라셀 드 칼리오스트로 백작

그는 대공직을 물려받기 위해서 클라리스와 결혼하려 들었지만 클라리스는 그를 거부하고 도망치게 된다.

이를 알게 된 루팡은 그녀를 구해내기 위해서 백작에게 클라리스 납치 예고장을 보내게 된다.

예고장으로 인해 루팡 3세의 라이벌 제니가타 코이치까지 이 사건에 끼어들게 된다.

거기다가 라셀 백작의 하인으로 위장해 위조 지폐를 훔치려는 미네 후지코까지 얽히면서 이 사건을 둘러싼

루팡 3세의 게임이 펼쳐진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의 시작점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은 제작 배경을 알면 사람이 갈려나갈 수 있다는 거를 알게 된다.

제작기간은 단 4개월 반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운 작품이다.

후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이 말하기를 "내 체력의 한계를 이 작품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강행군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신적인 데미지를 회복하기까지 몇년이 걸렸다고 하니 이 작품이 대단하다고 생각 할 수밖에 없다.

원래라면 공중전이 이루어질 예정이었던 것도 스케줄에 쫓기게 되면서 24시간 풀가동 작업으로

스텝들은 밥먹을 시간도 줄이기 위해서 캐릭터 인물들 처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했다고 한다.

이 떄 먹은 컵라면이 3600개쯤 된다고 하니 엄청난 강행군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채색할 인력이 부족해서 경리사원까지도 색칠에 참여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못한 영화는 영화가 망했기 때문이었다.

망한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전년도 1978년도에 나온 스타워즈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미친 수준에 SF붐이 일어나서 SF영화가 아닌 이상 성공할 수가 없었다.

(이 당시에 SF영화라 하면 일본 버블경제의 지표라고 표현하는 1988 "아키라"가 있다.)

그 후 TV재방송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시청률 22%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헀다.

이 영화를 본 루팡 3세의 원작자는 "이건 내 루팡이 아니다. 나는 이런 상냥한 루팡은 그리지 못한다.

이건 미야자키 하야오군의 작품이다"라고 표현 할 정도였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초창기 작품이 궁금하다면 한 번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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